한때 초록 식물들을 사들였다. 싱그러운 초록 잎들이 내 생활 공간에 있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시들시들 죽고 말았다.
아마도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집에 식물을 들인다는 건, 책임질 생명이 생긴다는 뜻이다. 최대한 자주 잎의 먼지를 닦아주고, 해를 쬐여주고, 환기를 시키고, 흙에 영양을 더해주고, 주기에 맞춰 물을 주고, 온습도가 적당한지 살펴주어야 한다. 게다가 식물마다 원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뭐라도 하나 조건이 맞지 않으면, 초록 생명은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은 채 시든다. 과거의 우리집 화분들처럼.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미니멀리스트가 된 중년 여성이 출연한 걸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전에 베란다 가득 수십 개의 화분을 키웠다고 한다(꽤 많은 우리의 엄마들이 그러하듯). 지금은 그 모든 화분을 없애고 대신 남편과 밖을 거닐며 자주 산책한다고 했다. "우리집 앞에 이렇게 많은 꽃과 나무가 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힘들게 화분에 집착했나 모르겠어요" 진심으로 홀가분해 보이던 그녀의 표정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왜 홀가분한지에 대해 공감했다.
매일매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세심하게 화분을 돌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화분에 물 주고 관리하는 일에서 엄청나게 기쁨을 느끼는 타입도 아니다. 사람마다 기쁨을 느끼는 일이 다른 것 같은데, 내 경우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거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기쁘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무엇이든 덜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화분을 관리하는 노력은 덜어낼 수만 있다면 나에겐 덜어내고 싶은 것이었다.
화분 관리하는 노력은 덜고, 초록의 싱그러움은 누릴 수 있는 방법 없을까? 달콤함만 누리고 싶은 다소 이기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방법이 있었다! 바로 초록을 수경식물(수경재배)로 키우는 것!
엄마 집에서 분양 받아온 아이. 가위로 줄기를 똑 끊어서 물에 꽂아주기만 했는데, 한 줄기에서 시작한 녀석이 2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무성하게 자랐다. 줄기가 너무 위로 자랄 때마다 가위로 잘라 물에 다시 꽂아주면서 가로로 풍성하게 모양을 만들어주고 있다. 똑 자른 줄기를 물에 담그면 거기서 다시 뿌리가 자란다. 신기하게도.
모던하우스에서 2천원에 샀던 작은 화분. 흙을 싹 털어내고 물에 담가 수경식물로 키우고 있다. 처음엔 화분으로 키우다가 수경재배로 방향을 정하면서 물로 옮겨온 녀석이다. 흙에서 자라던 화분을 물로 옮길 때는 첫째, 흙을 최대한 깨끗이 털어내는 게 중요하고 둘째, 뿌리가 상하지 않게 최대한 살살 조심해야 한다. 뿌리가 다치면 잘 자라지 못한다.
이 녀석은 번식력이 대단하고, 아주 튼튼하기로 소문난 식물이다. 공기 정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수경식물 재배를 위한 멋드러진 투명 유리병도 많다. 나는 되도록 새 걸 사지 않고 집에 있던 화병과 재사용 가능한 투명 유리병을 화병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유리병은 카페에서 사과주스를 마시고 가져온 것.
세 초록 식물의 정해진 자리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과 기분에 맞게 옮겨두곤 한다. 어떨 땐 네가 주방으로, 어떨 땐 네가 화장실 선반으로, 어떨 땐 다같이 오밀조밀 식탁 위로. 우리집은 계절마다 가구 배치를 바꾸는 편인데, 그에 맞게 식물 위치도 자주 바꿔준다. 식물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이리저리 바꾸어줄 때마다 새로운 분위기가 난다. 커다란 화분이었다면 낑낑대며 옮겨야 할 텐데, 손바닥 만한 것들이라 위치 이동도 쉽다.
내 경우, 투명 유리병을 화분으로 쓰는 게 편했다. 투명해서 물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반면 불투명한 용기인 경우 물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좀 더 신경 써서 들여다 봐야 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추가해주는 것 같다.
나는 계절 바뀔 때마다 한 번 정도? 전체 물을 갈아주고 있다. 복잡한 일은 아니다. 있는 물을 확 다 부어내고 새 물을 담아주기만 하면 끝. 수경재배 식물이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뿌리 쪽에 초록색 이끼가 낀다. 이끼 때문에 물이 뿌옇게 변했을 때도 전체 물을 깨끗하게 갈아주면 좋다.
화분보다 덜 민감하긴 하지만 수경재배 식물 역시 적절한 빛과 환기는 필수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방에 사는 초록이가 가끔 시들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며칠 정도 거실 창 앞에 가져다놓으면 다시 새파랗게 살아나곤 한다. 우리집은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환기를 하기 때문인지 별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관리는 이게 전부다. 이전에 화분을 관리할 때에 비하면 노력이 10분의 1도 들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너무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나 식물 키우는 데 소질 있나?'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다.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초록 식물을 가만히 본다. 예전에 화분을 키울 땐 화분을 보면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물을 잘 못 챙겨준 것 같고, 영양제라도 줘야 할 것 같고, 나 땜에 잘 못 자라는 것 같고.
하지만 수경식물 몇 가지만 단촐하게 남긴 지금, 초록 식물과 가장 가깝게 교감하고 있다. 특별히 뭘 해주지 않아도 쑥쑥 잘 자라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기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예쁘다 고맙다 기특하다를 연발하는 것 같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새 잎이 무성하게 올라오는 걸 볼 때면 생명의 힘에 놀란다. 식물을 바라보는 게 다시 즐거워졌다. 이런 마음이야 말로 초록 식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아닐까.
염려와 수고로움을 덜어내고, 초록의 기쁨은 느끼고 싶다면 수경식물에 도전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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