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공간 수납박스, 소품 정리함, 이동식 정리함 등등 '수납정리함'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새해를 준비하고, 집정리 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지금보다 단순하게, 깨끗하고 정돈되게 살기를. 그래서 내년엔 내가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들이 아닐까.
서랍과 벽장은 주로 작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그래서 물건들끼리 마구 섞이기 쉽다. 주방 서랍은 가위, 집게, 티스푼, 포크, 배달음식 쿠폰 같은 것들이 섞이기 쉽다. 속옷 서랍은 팬티와 양말이 뒤섞여 있을 때가 많다. 책상 서랍은 지우개, 연필, 집게, 샤프심, 스티커 같은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화장대 서랍은 또 어떤가. 립스틱, 아이펜슬, 각종 브러시 등등.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바로 수납정리함. 서랍과 벽장 속 공간을 다시 작게 분할해주어 품목별로 작은 물건들을 분류해 넣을 수 있다. 뒤적거리며 물건 찾는 스트레스와 시간을 아낄 수 있게 해준다.
종이 쇼핑백으로 내가 직접 만든 수납정리함이다. 사실 '직접 만들었다'라기엔 제작 과정이 정말 간단하다. 1. 쇼핑백 손잡이를 가위로 잘라내고 2. 원하는 높이가 되도록 쇼핑백을 위에서부터 두세 번 안쪽으로 접어주면 완성. 하나 만드는 데 겨우 3분 정도 걸린다.
이 종이수납함엔 쓰레기봉투와 비닐봉투를 모아두었다. 쓰레기봉투를 사면 10장, 20장씩 뭉쳐져 있다. 샀을 때 바로 한 장씩 네모낳게 접어 종이수납함에 차곡차곡 세워놓으면 꺼내 쓸 때 톡 뽑아서 쓰면 되서 너무나 편리하다. 서로 붙어 있는 쓰레기 봉투를 손가락으로 밀며 떼어내지 않아도 된다. 미래의 나를 위한 작은 배려랄까.
비닐봉투도 하나씩 접어서 모아두었다가 비닐 쓰레기 모을 때 재사용하고 있다. 배달음식 시켰을 때, 택배 시켰는데 커다란 비닐로 물건이 싸여 있을 때. 그 비닐을 그냥 버리지 않고 이렇게 한 번이라도 더 재사용하려 노력한다. 덕분에 재활용 쓰레기 버릴 때도 깔끔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이대로 묶어서 한 번에 비닐 분리수거통에 쏙 넣으면 끝.
우리집 속옷과 양말 서랍. 좌측이 남편 서랍, 우측이 내 서랍이다. 차곡차곡 세워진 양말과 속옷. 서랍을 열 때마다 상쾌하고 정돈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종이쇼핑백을 접어 만든 수납정리함으로 속옷과 양말을 분리해줬다.
각종 잭과 충전기들도 종이수납함을 이용해 정리했다. 꽤 자주 꺼내 쓰는 것들이어서 서랍 깊숙이 넣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항상 책상 위에 벌려놓기도 그랬는데. 이렇게 벽장에 종이수납함을 만들어 한번에 담아놓으니 꺼내 쓰기도 좋고 지저분한 것이 밖에 나와 있지 않아 방을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벽장칸. 이마트 쓱배송 때 받게 되는 종이 쇼핑백을 활용한 우리집 주전부리함이다. 말 그대로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들이 들어가 있다. 과자, 캔디, 초콜릿 같은 것들. 주방에 잘 보이게 놓아도 상관 없는 것들이지만, 종이수납함으로 한번 가려두니 군것질이 저절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서 쭉 그렇게 살고 있다. 아예 안 먹을 순 없지만, 눈앞에서 한번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손이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마트 쓱배송 종이백은 종이수납함을 만들기에 참 좋아 자주 활용한다. 크기가 커서 옷 수납함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종이백이 엄청 짱짱하고 강력하다. 웬만해선 쓰러지거나 구겨지지도 않는 재질. 크기가 크기 때문에 높이가 높은 수납함이 필요할 때도 만들어 쓰기 좋다.
아기 옷 서랍 역시 종이수납함으로 정리했다. 배넷저고리, 내복, 손수건과 외출복으로 칸을 구분해 옷을 수납한다. 꺼내 쓸 때 빠르게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종이수납함 한 칸을 써내보면 이런 모습. 교촌치킨 쇼핑백을 이용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ㅎㅎ). 종이쇼핑백으로 수납함을 만들면 이런 글자들 때문에 지저분하지 않을까 걱정할 수 있지만, 측면에만 글자가 써져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서랍 속에 들어가면 측면의 글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부피가 있는 큰 옷들은 큰 사이즈의 쇼핑백을 활용해 종이수납함을 만들어주면 된다. 큰 스웨터나 패딩을 사면 담아주는 큰 쇼핑백들을 이럴 때 활용한다. 앞에서 잘 활용한다고 말했던 이마트 쓱배송 종이봉투가 여기서도 다시 등장했다!
종이수납함에 차곡차곡 옷을 세워서 접어넣으면 어지럽던 서랍도 완벽하게 정리수납할 수 있게 된다.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집 종이수납함은 크라프트 재질의 쇼핑백으로 통일해서 만들었다. 뭐든 컬러를 통일해주면 한결 더 깔끔해 보이는 법! 겉으로 드러나진 않는 서랍과 벽장 속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단정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크라프트 재질의 쇼핑백이 흔해서 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또, 내가 크라프트 색을 좋아하기도 한다. 아무 무늬가 없는 크라프트 재질로 고집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크라프트 색을 띄고 있으면 종이수납함으로 만들었을 때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것 같다. 꼭 크라프트가 아니더라도 화이트 컬러 등으로 통일을 하는 것도 깔끔하겠다.
그렇다고 종이백을 많이 모으는 건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맨 왼쪽에 세워진 쇼핑백 딱 하나 만큼까지만 모은다. 그 이상이 되면 싹 꺼내서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고 있다. 최대한 장바구니를 사용하더라도 도시에 살다 보면 쇼핑백과 비닐봉투가 집에 많이 생긴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올 때마다 무작정 모으다 보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은 순식간! 다시 잘 사용할 수 있는 것만 깨끗하게 잘 정리해서 보관하려 노력하고 있다.
정리수납함이라는 물건을 새로 살 필요가 없다. 집에 모아두었던 쇼핑백 중에 하나 골라, 접어주기만 하면 된다. 현재 우리집 곳곳에서 활용하고 있는 종이수납함만 10여개가 훌쩍 넘는다. 이걸 모두 플라스틱 수납함으로 구매했다면 1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썼어야 한다.
내가 예전에 플라스틱 수납함을 썼을 때 불편한 건 크기가 딱 정해져 있다는 점. 문구용품 서랍에서 쓰던 플라스틱 수납함을 속옷함으로 다시 쓰고 싶지만, 서랍의 크기나 높이가 달라 맞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그럼 또 결국 그 서랍의 크기와 높이에 딱 맞는 플라스틱 수납함을 다시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종이수납함은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크기와 높이로 접어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딱 맞는 정리수납함이 된다.
처음에 걱정했던 것이 종이수납함의 내구성이었다. 종이라서 흐물거리거나 쉽게 망가지진 않을까. 하지만 웬걸, 플라스틱 수납함 만큼이나 견고하다. 1년 이상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물건을 잘 담기 위해 코팅이 잘 되어 있고, 두껍고 빳빳한 재질을 쓰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안쪽으로 두 번 이상 접어서 만들기 때문에 더욱 튼튼하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를 쓰는 것. 게다가 한 번 쓴 쇼핑백을 재사용 하는 것. 환경과 지구에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다. 수납함이 쓸모를 다하여 버리게 된다 해도 종이수납함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반면, 플라스틱 수납함을 버리면 이 지구에 플라스틱 덩어리를 하나 또 내던지는 일이 될 것이다. 한 번씩 대청소를 하면 버려지는 플라스틱 수납함들이 꽤 있었는데, 이제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면서 '버리기'가 유행처럼 번진다. 헌 것, 알록달록한 것을 버리고 새하얗고 깨끗한 새 것을 다시 사들이는 삶을 미니멀 라이프라고 칭하는 경우도 많다. 무작정 버리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는 아니다. 버리기 전에 이 물건을 다른 용도로 재사용 할 수 없는지 잠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버리려던 물건이 나에게 꼭 필요한 용도의 물건으로 탈바꿈 할지도 모른다. 그럼, 버리지 않아도 되고 새로 사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내가 종이수납함을 쓰기 시작하게 된 것도 그때문이다. 잘 정리하기 위해 수납함이 꼭 필요한데, 사지 않고 지금 있는 것 중에 수납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보니 쇼핑백을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럴 때 '가짜 말고 진짜 미니멀 라이프 실천을 했구나!' 나에 대한 뿌듯함이 마음속 가득해지는 걸 느낀다.
작은 실천과 시도들이 모여 내 삶의 방향을 만든다고 믿는다. 자투리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해준다는 온갖 정리수납함 신제품들이 왜 좋지 않을까. 하지만 한 번 썼던 종이백으로 소박하게 만든 나만의 종이수납함을 볼 때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어느 방향인지 떠올리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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