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파트에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딱히 "체리색 인테리어가 너무나 내 취향이어서" 우리집이 그런 건 아니다. 신혼집을 장만할 당시, 집을 사느라 재정적으로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 맨 상태였다. 그런데 체리색 몰딩, 체리색 방문, 체리색 현관문, 체리색 신발장, 체리색 샷시와 창문을 모두 바꾸려면 집 골조를 뜯어 고치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해야 했다. 몇 백, 몇 천이 예상되는 공사.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컸다. 머리를 잘 쓰면 체리색 인테리어도 느낌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체리색 몰딩 인테리어 예쁘게 하기에 도전하게 됐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체리색 인테리어. 여전히 오래된 주택에선 몰딩뿐 아니라 바닥, 주방 싱크대까지 체리색으로 도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땐 그게 고급 주택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비록 지금은 인테리어 하고 싶다면 뜯어 고쳐야 할 1순위가 체리색이 되었지만.
그런데 체리색 인테리어로 몇 년 살아보니 의외의 매력이 있다. 새하얗게 눈부신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과 친근함. 그리고 편안함. 곳곳의 체리색들이 안정적으로 집을 감싸준달까. 빈티지하고 따뜻한 느낌의 카페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의외로 체리색 인테리어가 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물론, 벽지와 가구 등의 인테리어에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게 아니면 그냥 산만하고 좁아 보이기 쉽다.
벽지와 가구를 선택할 때 색깔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인테리어를 하기 전에, 전체적으로 어떤 톤의 벽지와 가구가 들어와야 하는지 몇 가지 색깔 옵션을 정했다. 그리고 딱 그 안에서만 색을 썼다. 체리색과 어울리는 몇 가지 색으로 제한하기만 해도 집이 훨씬 깔끔하고 단정해 보인다.
특히 벽지를 선택할 때 고민이 많았는데, 세상 가장 무난한 화이트 벽지(종이 소폭 합지)로 정했다. 내가 원한 집의 느낌은 단정하면서도 생기 있는 공간. 무균실처럼 너무 하얀 집도 싫었고, 너무 컬러풀하고 맥시멀한 느낌도 싫었다. 그래서 벽지를 최대한 깨끗하게 바르고, 가구에 컬러감을 주기로 했다. 반대로 벽지에 포인트 컬러를 쓰고, 가구를 화이트톤으로 깨끗하게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거실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가구인 식탁은 화이트톤으로 선택했다. 나중에 어떤 집에서 어떤 인테리어로 살게 되더라도 오래 질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식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 외에 작은 조명이나 소품은 되도록 흰색을 선택한다. 흰색이 가장 구하기 쉽기도 하고, 집의 어지러운 느낌을 없애준다.
우리집 작업용 테이블. 6인용 테이블로 사이즈가 꽤 크다. 집에서 일하는 우리 부부가 나란히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기도 하고, 손님이 많을 땐 거실로 빼 식사를 하기도 한다. 과감하게 체리색으로 선택했는데, 집과 잘 어울린다. (사실 체리색 테이블을 구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집에 방문한 손님들에게 테이블 멋지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우리집 거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오디오. 역시 포인트 컬러가 체리색인 것으로 들였다. 체리색 가구는 집과 세트인 것처럼 어우러진다. 모든 가구를 체리색으로 맞추면 올드해 보이겠지만, 몇 가지 중요 가구(특히 체리색 창문이나 체리색 기둥 근처에 둘 가구) 정도는 집에 통일감을 준다.
연필꽂이, 액자도 컬러감을 맞췄다. 작은 소품은 흰색이나 체리색(짙은 나무색)으로 선택하려 노력한다.
나는 어울리는 컬러를 고를 때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예를 들어, 오렌지 나무에 있는 컬러들은 서로 잘 어울린다. 오렌지색+갈색, 오렌지색+초록색, 초록색+갈색. 또 노을이 지는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색들도 서로 잘 어울린다. 보라색+하늘색, 하늘색+핑크색, 남색+보라색 등.
따라서 나무 기둥색인 체리색은 초록색과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는 것! 어떤 나무에서든 볼 수 있는 갈색+초록색 조합이니까. 그래서 초록색을 우리집의 포인트 컬러로 쓰기로 했다.
식탁 의자로 사용하고 있는 초록색 톤 체어. 식탁 의자 두 개 중 하나만 초록색으로 선택해 포인트를 줬다.
집안 곳곳에 둔 수중 식물들. 초록초록한 잎들이 집의 창, 가구, 몰딩과 잘 어우러진다. 수중 식물이기 때문에 딱히 손 갈 일도 없고 물만 제때 보충해주면 된다. 우리집의 생기를 담당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액자 그림도 초록 계열이 포인트가 되는 그림으로 선택할 때가 많다. 지금 걸려 있는 그림은 남해 여행 때 편집샵에서 구입한 포스터. 제비꽃의 초록색 잎들이 우리집 거실의 포인트가 되어주고 있다.
내가 인테리어 구상할 때 핀터레스트에서 서칭한 해외 집 사진들이다. 주로 앞에서 내가 선택했던 흰색, 초록색을 많이 사용했고 그 외에 파랑, 노랑이나 오렌지 컬러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SNS에서 #미니멀리스트 #미니멀인테리어 #미니멀라이프 키워드 팔로잉을 많이 하게 됐다. 그곳에 올라오는 집 사진들은 온통 새하얗다. 문도, 몰딩도, 가구도, 샷시도, 창문도, 싱크대도. 인테리어 자료조사를 할 때 그런 집들을 보고 있으면 체리색이 덕지덕지 붙은 우리집이 더 못나 보인다. 당장이라도 리모델링 공사를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살면서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대공사가 아니어도 예쁠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집의 벽지와 가구를 선택했더니, 어느새 내 마음에 드는 집의 모습이 되었다. 집에 온 손님들도 "이 집은 뭔가 깔끔하고 포근해"라고 말해준다. ("건강해질 것 같은 집이야"라는 말을 한 사람도 있었는데, 정확한 의미를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ㅎㅎ)
체리색 몰딩을 바꿀 수 없다면, 체리색 몰딩만의 예쁨을 돋보이게 해주면 어떨까. (물론 워낙 하얗고 모던한 쪽이 취향이라면 쉽지는 않겠다ㅠㅠ) 내가 찾은 체리색 몰딩의 예쁨은 자연에 가까운 색이라는 점, 오두막처럼 따뜻한 느낌을 내는 색이라는 점이었다. 단정하고 따뜻한 느낌의 우리집에서 우리는 충분히 예쁘게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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