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를 이해하기 위한 독서. 책 <뉴그레이: 마케터들을 위한 시니어 탐구 리포트>, 정지원 유지은 염선형 지음, 미래의창 출판사. 읽으면 밑줄 그은 문장 메모 저장해두기.
뉴그레이: 마케터들을 위한 시니어 탐구 리포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 교수의 '행복을 위한 다섯 가지 욕망'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는 인간이 행복을 느끼려면 다섯 가지 욕망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긍정적 정서(자신감 혹은 낙천성), 몰입(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발적으로 헌신하게 되는 것), 관계(타인과 함께하는 것), 의미(중요하다고 믿는 것에 소속되고 기여하는 것), 성취(이기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좋아서 추구하는 것)다.
시니어의 욕망은 이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행동들을 포함한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자신다워지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실패를 거듭해온 시니어 마케팅은 다름 아닌 시니어의 욕망에 집중하는 것에서 시니어 기획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얼마나 마이크로하게 시니어 개인을 파악할 수 있을지, 평생을 통해 성취하지 못했던 것들을 크고 작게 이루고 발견할 수 있게 해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질문은 츠타야 서점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의 질문과도 통한다. 그는 도쿄 다이칸야마에 복합문화공간 T사이트를 기획하면서 "60세 이상의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일본에서 구매력과 교양을 갖춘 세련된 프리미어 에이지인 시니어층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면 궁극적인 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자문했다.
시니어의 욕망은 단일하지 않다. 시니어는 건강에 미친 건강기능식품 마니아가 아니다. 자녀들의 52%는 부모님 추석선물로 건강기능식품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부모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패션,의류,잡화다. 눈여겨볼 것은 응답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도드라진 1위가 있는 게 아니라 패션/의류/잡화(15.6%), 건강기능식품(13.8%), 신선식품(13.8%), 생활/미용/가전(10.1%), 가공식품(9.2%), 안마용품(8.3%), 주방가전(6.4%)이 소폭의 차이를 두고 차례대로 꼽혔다. 부모의 바람은 자녀의 생각보다 다양하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의 표현처럼 시니어 시장은 '다양한 마이크로 시장의 집합체'다. 70%라는 거대 시장이지만 단일시장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거대한 시장을 작은 조각들로 가르는 시니어의 욕망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시니어에게 '전성기 때처럼', '젊었을 때처럼' 같은 표현이나 '여전히 아름답다'라거나 '젊었을 때보다 낫다'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너무 무례하다 생각하지 않는가? 시니어는 너무 쉽게 자신의 과거와 비교당한다. 시니어는 더 이상 성장하거나 발전할 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시니어라고 해서 과거형으로 살지 않는다. 시니어도 도전하고 성장하며 모험을 떠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들 인생에서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브랜드가 시니어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내는가는 누가 더 매력적인 미래를 제시하는가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케터에게는 현실의 반영을 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65세 이상이면서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병약하지도 않은 80%의 노인, 이들을 위한 시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시니어 비즈니스에 주목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그렇다면 이 80%를 위한 시장은 왜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는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노년은 나이보다는 건강 상태와 재정 상황에 따라 니즈가 달라진다. 더불어 가족구성, 교육수준,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등도 작용한다. 1인 노인 가구라 하더라도 결혼 경험이 없는 시니어와 결혼 후 이혼이나 졸혼을 겪은 시니어는 다르다. 자녀나 손주의 유무에 따라서도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진다. 외양이 비슷해 보여도 살아온 경험이 다르므로 시니어라는 개별적 존재는 매우 독특하다. 그래서 시니어 시장은 다양한 소비패턴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실버'라 특정 짓는 브랜딩이 가진 위험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시니어가 선호하는 브랜드는 젊은 층(2040세대)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40세대와 5070세대가 좋아하는 식음료 브랜드 상위 20개 중 12개가 일치한다. 비시니어 타깃과 시니어 타깃의 선호 브랜드 간 정합성이 60% 이상이라는 점은 시니어 브랜딩을 기획하기에 앞서 꼭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생애 걸쳐 조각된 개인의 개성이 가장 또렷해지는 시기이자 미뤄왔던 꿈과 욕망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사는 시니어는 분명 이전과 다른 욕망을 품는다.
무작정 시니어를 타깃으로 삼지 말고 '00한 시니어'를 위해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기를 작동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시니어', '앱을 다운로드받아 쓸 수 있지만 복잡한 기능은 쓰지 못하는 시니어'처럼 말이다.
하루메쿠 잡지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시니어 눈높이에 맞춘 스마트폰 사용법'에 관한 2018년 2월호 특집 기사였다. 고령층을 위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다룬 이 기사는 '화면이 갑자기 회전한다'거나 '화면 밝기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등 독자들이 불편해하는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답하는 방식으로 풀어 쓴 것인데, 매우 구체적인 솔루션이 시니어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특집을 기점으로 하루메쿠 신규 독자가 3만 5천여 명이나 늘었다고 한다. 하루메쿠가 자식이나 손주에게도 일일이 물어보기 애매한 문제에 대한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잡지가 다루는 내용은 철저히 현실적이며 실용적이다. 평균 독자 나이 65세 잡지답게 '배우자 사망 후 유족연금 산출 방법', '딱 내가 쓸 스마트폰 사용법', '시니어 미용' 등 구체적인 노년의 고민을 다룬다.
친칭의 장점은 대리 결제보다 커뮤니티성에 있다. 물건을 살 때 가족이나 친구의 의견과 관심이 중요한 시니어들을 위해 사회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여전히 많은 기업과 브랜드들이 시니어를 위한 디지털 전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글씨에 기능을 축소한 웹사이트, 혹은 앱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한다. 시니어 입장에서는 서비스의 핵심과 본질이 오프라인보다 특별히 더 우월하지 않으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타오바오의 가족 계정과 대신 결제하기 기능은 소셜 쇼핑을 통해 쇼핑의 재미라는 본질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시니어 플랫폼으로 발돋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니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가족 관계와 소통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훨씬 재미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인터페이스나 인터랙션이 아니라 관계다.
요즘 시니어에게도 이러한 가치소비가 나타난다. 돈은 있지만 쓸 수 있는 돈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MZ세대와 유사한 동인을 갖는다. 그러나 시니어에게는 '시간'이라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시니어에게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 그것도 건강이 허락하는 양질의 시간 말이다. 무엇을 하든 '언제 또 해볼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시니어의 가치소비는 MZ세대보다 더 과감한 형태를 띤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의 대사처럼 나이에는 어떤 우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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